제각각 단추들

그들만의 교황

반짇고리 2014. 8. 30. 17:48

한국에는 수많은 프란치스코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그 성인 또는 세례명이 의미하는 바를 모를 뿐더러 관심조차도 없지요. 소수 몇몇은 알고 있지만 그뿐. 삶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천주교인이라면 기도 중에 이 표현을 수없이 되뇌이지만 역시 그뿐. 대부분의 기도는 자기네만 잘 살게 해달라 할 뿐입니다. 설혹 신앙공동체 또는 사회공동체라는 더 넓은 범주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했다 할지라도 나가며 버려지는 주보마냥 그 기도는 문턱을 넘지 못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성당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그 꼴이 보기 싫어서...... 그런 모습을 너무 많이 접해 저도 그게 자연스러워질까봐요.


이번 교황의 방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열렬히 환호했습니다.

이게 웬 일인가 싶더라고요.

낮은 곳으로 임하는 그의 모습에 감명을 받아서?

이걸 시발점으로 우리 사람들의 각성이, 자각이 일어나는 것일까?

늘 깨어있으라는 그 말씀대로?


하지만 곧 알았습니다.

"왠지 그 분의 손 한번 잡으면...

왠지 그 분의 눈길 한번 받으면...

복 받을 것 같고 소원이 이루어질 것 같다."는 누군가의 흥분된 목소리.


교황이 한 말은 제 멋대로 해석되었고, 교황이 한국에서의 닷새동안 일관된 행동을 하였음에도 그걸 기억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리고 그가 떠난 지금 그의 행적과 그가 남긴 메시지는 선거 끝난 벽보마냥 뜯겨 버려지고 있습니다. 어차피 그네들의 교황은 여기까지가 쓸모였을테니까요.


요즘 저는 욕을 많이 퍼붓고 있었습니다.

힘없는 이들의 아픔에 공감 못 하고, 심지어 공격적 말 쓰레기를 쏟아내는 이들에게 "짐승만도 못 한 것들!"이라며 거칠게 대거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믿고 있는 이들의 입에서조차 그 말 쓰레기가 날 것 그대로 뱉어지는 순간...... 저는 더 이상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교황으로 인해 이 땅의 사이비 교인들과 소위 지각있는 이들의 민낯이 더욱 더 드러난 요즘......

'차라리 안 오셨으면 좋았을 걸'하는 속상함마저 듭니다.

<2014년 8월 19일 화요일 작성>



김용민의 그림마당(2014-08-28) from 경향신문



한겨레 그림판(2014-08-18) from 한겨레신문